
영화 보는 내내 마치 예쁜 그림책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정말 딱 웨스 앤더슨 영화다. 대칭적인 화면 구도, 파스텔톤 색감, 기발한 연출, 그리고 그 특유의 유머까지. 근데 단순히 예쁘기만 한 영화가 아니라, 뒤로 갈수록 묘하게 씁쓸한 감정이 남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한때 화려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전성기를 회상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호텔의 전설적인 컨시어지, 구스타브 H와 그의 견습생 제로가 한 노부인의 죽음을 둘러싼 유산 싸움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유쾌하면서도, 영화가 끝나면 묘하게 애잔한 기분이 든다.
구스타브 H는 영화 내내 품격과 예의를 유지하는 인물인데, 그게 그냥 우스꽝스러운 허세가 아니라 정말 멋지게 보인다. 그는 호텔을 운영하는 방식도, 손님을 대하는 태도도 완벽한 신사인데, 그게 점점 변해가는 시대와 충돌하면서 점점 더 안쓰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옆에서 묵묵히 배우는 제로의 성장도 은근히 감동적이다.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디테일이다. 화면 하나하나가 그림처럼 정교하게 짜여 있어서, 그냥 멈춰놓고 봐도 될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는 미스터리 + 모험 + 코미디가 섞여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한 시대의 종말”이라는 씁쓸한 감정을 품고 있다. 영화 속 호텔도, 구스타브도 결국 시대의 흐름 앞에서는 변해갈 수밖에 없다는 게 느껴진다.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지만, 동시에 뭔가 아련한 감정도 남는다. 웨스 앤더슨 특유의 연출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추천. 그리고 그냥 예쁜 영화 보고 싶다면, 더더욱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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