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의 해부 보고 난 후

추락의해부 포스터

영화가 끝나고 검은 화면을 보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대충 법정 스릴러겠거니 했는데, 이건 그냥 단순한 진실 공방이 아니라 완전 인간 심리 해부 수준이었다. 초반에는 사건 개요가 설명되면서 꽤 담담하게 흘러가는데, 점점 갈수록 캐릭터들 사이에 쌓여 있던 감정들이 하나씩 터져 나오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남편이 집에서 떨어져 죽었고, 아내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다. 사고냐, 자살이냐, 아니면 타살이냐. 법정에서는 아내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법적인 증거 싸움이 아니라, 한 인간을 둘러싼 관계와 감정,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사건을 해석할 때 얼마나 주관적인 시각을 갖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사실 사건 자체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부부 사이의 역학 관계였다. 서로를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끝없이 오해하고, 사랑하지만 한없이 냉정해지는 그 묘한 감정들이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아내의 캐릭터가 되게 미묘한데, 관객이 끝까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진짜 남편을 밀었을까? 아니면 그냥 불행한 사고였을까? 이 질문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던지는데, 답은 주지 않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법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녹음된 대화가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거기서 드러나는 감정의 결이 진짜 소름 돋았다. 둘 다 자기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상처를 갖고 있는데, 서로가 듣고 싶은 대답만 강요하는 느낌이랄까. 결국 이런 관계가 계속되면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고, 관객이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만, 사실 진실이란 것도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영화가 끊임없이 보여준다. 법정에서는 증거와 논리로 결론을 내리지만, 인간 관계에서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거.

보고 나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법정 스릴러라고 해서 단순한 추리극을 기대했다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인간 심리에 관심이 많다면 강력 추천. 나는 보고 나서도 계속 씁쓸한 여운이 남더라. 이런 영화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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